2019년 08월

영화 마진콜에 나오는 상사들은 부하직원에게 늘 "쉽게 말하라"고 한다. 그래프와 숫자를 동원하는 애널리스트에게 "영어로 말하라"고 하고, 심지어 회장님은 "아이한테 설명하듯이 설명해보라"고 요구한다. 어떤 평론가가 그 장면을 보고는 "월가의 고위층들이 그렇게 멍청했다는 것을 풍자했다"고 평했는데, 그건 영화가 직업인 그가 기업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 같다. 나도 보고 받을 때 "짧게, 쉽게, 한 문장으로 말해달라"는 요구를 많이 하는데, 그건 어려운 데이터를 읽을 줄 몰라서가 아니라,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부하가 작성한 모든 데이터를 상사가 다 읽는 순간, 상사와 부하 둘이서 똑같은 일에 시간을 쓰는 셈이다. 굉장한 비효율이다. 2. 좋은 상사는 요약된 짧은 얘기로도 그가 설명하려는 모든 디테일을 유추할 수 있다. 짧게 듣고도 결론을 내려주거나 더 보태줄 수 있다. 실력 없는 상사는 마진콜의 저들처럼 "쉽게 얘기하라"는 요구 자체를 하지 못한다. 3. 실무자가 본인이 준비한 일을 쉽고 짧게 정의하지 못한다는 건 아직 그 일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지 못했다는 뜻이다. 컨펌해봐야 그 사람 그 일 하면 결과 안 좋다. 실력이 없으면 어려운 용어를 쓰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쉬운 용어를 쓰지 못한다.

프레인 글로벌 CEO 여준영

뭘 해도 잘 할 사람이 만든 결과 누가 해도 잘 될 일에 뛰어든 바람에 얻은 결과 그거 하나 잘하는 사람이 바로 그걸 해서 만든 성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맷집 있게 제일 오래 해서 얻은 결과. 그동안 내가 구경한 주변의 "결국엔 잘 된 일들"은 크게 저 네 방식인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늘 꿈꾸고, 많은 사람들이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방식인 "소질 없는 사람이 노력으로 극복해낸 결과"는 별로 구경하지 못했다. 그런 케이스로 알려진 게 많아 보이지만, 사실은 저 넷 중 하나가 그렇게 포장된 것들이 많다. 안 되는 걸 노력으로 바꾸는 건 참 멋진 일이지만, 노력은 시간의 함수고,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살기 때문에, 안 되는 걸 바꾸는데 쏟은 시간이 너의 인생을 아름답게 했다고만 볼 순 없다. 그러니까 우선은 저 위에 말한 넷 중 하나의 길을 모색해봐라. 첫 번째는 맘먹는다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 수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는 타고난 능력이 없어도 선택에 따라, 마음 먹기에 따라 가능한 일들이다. 오히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을 노력으로 해내는 것이 제일 험한 여정인데, 세상이 쉬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들 말하는데, 좋아서 하는 일이 계속 좋은 상태가 유지되려면, 역시 저 넷 중 하나에 결합되어야 할 거다. P.S "뭘 해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게 제일 불가능해 보이겠지만 의외로 제일 쉬울지도 모른다. 왜냐면 뭘 해도 잘하는 비법이 스킬이 아니라 마인드에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프레인 글로벌 CEO 여준영

패스트트랙아시아에서 만든 거의 10여개 가까운 회사들은 직접 다 IR을 했었는데, 산업군도 정말 다양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다. 그 중에 사실 패스트파이브 IR이 가장 심플했다. 전국민이 알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랄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모델. 공유오피스 비즈니스 모델은 1단계 부동산 서비스업 -> 2단계 커뮤니티 플랫폼업 -> 3단계 기술 기반 인텔리전트 인프라업으로 나뉠텐데, wework을 포함한 그 어떤 회사들도 2단계로도 진입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wework이 1단계만 충분히 잘해도 50조의 가치는 있다고 본다. 2단계의 조짐들은 회사가 의도한 것은 아니어도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모습들이 많기에 어렵지 않게 진화될거라 보지만, 여전히 업체들 간의 경쟁은 1단계다. 1단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사업의 본질은 아주 심플하다. 1) 누가 더 많은 돈을 raise 해내느냐 2) 누가 더 제값 받고 잘 파느냐 공유오피스는 돈 없으면 못하는 사업이다. 호점 1개만 제대로 만드는데도 20-30억은 들어간다. 한두개 호점이야 건물주랑 사바사바 잘해서 싸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10개, 20개는 못한다. 부동산을 활용한 업에 지름길은 없다. 고객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1명의 고객을 마케팅 잘 해서 좋은 lead acquisition cost로 데려와도, 호점 1, 2곳 있는 회사와 호점 20곳 있는 회사 중에 누가 계약 체결까지 갈 확률이 높을까. 당연히 후자다. 1단계 공유오피스 전쟁의 절반은 머니게임의 속성이 강하게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두 번째는 누가 더 제값 받고 잘 파느냐에 있다. 공유오피스를 다 채우는건 쉽다. 싸게 준다면. 핵심은 충분한 수준의 공헌이익률이 나오는 가격대로도 다 팔 수 있나에 있다. 시간 지나서 주요 공유오피스 업체들의 재무제표를 다 까보면 알게된다. 어디는 제값을 받고 장사를 잘했고, 어디는 싼값에 후려쳐서 팔면서 입주율 높다고 했는지. 이건 단순히 세일즈를 잘하는 것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고, 입주 후 서비스도 좋아야 한다. 즉, 공유오피스의 세일즈는 세일즈와 서비스의 결합이다. 이렇게 심플한 비즈니스이다보니, 궁금해할 것 같은 숫자들만 잘 정리해두면 사실 질문도 별로 없었다. 수십번 피칭하면서 공통적으로 나왔던 질문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패스트트랙아시아 CEO 박지웅

패스트캠퍼스를 한지 벌써 5년째가 넘어간다. 그동안 패스트캠퍼스를 보고 여러 카피캣들이 등장했었고, 또 등장하고 있다. 성인교육 시장은 이제 막 커져가고 있기 때문에, 사실 성인교육 시장의 변화 양상과 과거 사교육 시장의 발전 모습을 보면 공통점들이 많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과거에 대학생들이 창업하는 아이템의 절반은 과외 관련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보고 듣고 접해본 것 중에 꽤 돈이 된다는 것을 아는 몇 안되는 것이기 때문일까. 근데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보면, 과외로 짭짤하게 개인들이 돈을 좀 벌었었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과외를 제대로 기업화해서 내가 과외를 직접 안 뛰고도 굴러가는 과외 '기업화'를 했던 케이스는 사실 별로 없다. 성인교육 시장도 마찬가지인데, 대부분은 사장님이 직접 강의를 하면서 시작이 된다. 내가 직접 강의를 하니까 당연히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고, 강사료도 별도로 카운트 안 하니까 이익률도 좋아 보인다. 근데 문제는... 일단 내가 강의를 안 하면 돈이 안 벌리고, 또 강의를 월화수목금토일 하자니 이게 사람이 사는 게 아닌 게 된다. 또, 내가 모든 분야를 다 아는 것도 아니니까 한두 분야밖에 할 수가 없다. (-> 여기까지 패스트캠퍼스도 초창기에 다 겪었던 이야기) 그래서 내가 강의를 안 하고 다른 사람들 데려와서 시켜야겠다 -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 두 개는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라는 점이다. 전자는 스타 학원강사가 되는 것이 핵심이고, 후자는 컨텐츠 프로덕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동일 사업의 연장선상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업을 새로 시작하게 된다. 과외로 몇백, 몇천씩 번 개인들은 너무 많지만, 과외 기업화가 이뤄진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다시 상기해보면 교육 비즈니스의 특징이 드러난다. 내가 하다가 남이 하게 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고, 돌이켜보면 그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즉, 내가 해서 잘되고 있는 이 비즈니스가 남이 하게 했을 때 잘될 것이라는 연관성은 (조금 과장하면) 아예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제대로 기업화하지 않겠다면 방법은 하나. 내가 어마무시한 스타강사가 되는 것이다. 메가스터디 손주은, 시원스쿨 이시원, 쓰리제이에듀 존쌤 같은 존재. 물론, 내가 훌륭한 기업가를 꿈꿨지, 스타 강사를 꿈꾸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길을 생각하기엔 꽤 심한 자아 분열이 일어날지도.. 교육업에 뛰어들어 1,2년 강사 하면서 돈 조금 버는 사람들은 많아도, 10년 이상 오래 가는 교육 기업을 제대로 만든 회사는 별로 없는 것(본인이 직접 강사가 아닌 회사)이 이를 보여준다. Easy to start, hard to scale. 스타트업의 본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페스트트랙아시아 CEO 박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