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진콜에 나오는 상사들은 부하직원에게 늘 "쉽게 말하라"고 한다. 그래프와 숫자를 동원하는 애널리스트에게 "영어로 말하라"고 하고, 심지어 회장님은 "아이한테 설명하듯이 설명해보라"고 요구한다. 어떤 평론가가 그 장면을 보고는 "월가의 고위층들이 그렇게 멍청했다는 것을 풍자했다"고 평했는데, 그건 영화가 직업인 그가 기업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 같다. 나도 보고 받을 때 "짧게, 쉽게, 한 문장으로 말해달라"는 요구를 많이 하는데, 그건 어려운 데이터를 읽을 줄 몰라서가 아니라,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부하가 작성한 모든 데이터를 상사가 다 읽는 순간, 상사와 부하 둘이서 똑같은 일에 시간을 쓰는 셈이다. 굉장한 비효율이다. 2. 좋은 상사는 요약된 짧은 얘기로도 그가 설명하려는 모든 디테일을 유추할 수 있다. 짧게 듣고도 결론을 내려주거나 더 보태줄 수 있다. 실력 없는 상사는 마진콜의 저들처럼 "쉽게 얘기하라"는 요구 자체를 하지 못한다. 3. 실무자가 본인이 준비한 일을 쉽고 짧게 정의하지 못한다는 건 아직 그 일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지 못했다는 뜻이다. 컨펌해봐야 그 사람 그 일 하면 결과 안 좋다. 실력이 없으면 어려운 용어를 쓰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쉬운 용어를 쓰지 못한다.

-프레인 글로벌 CEO 여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