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나보다 어린 나의 남친은 오랜 기간 꿈이 사업가다. 지금까지 계속 그 꿈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이번에 그가 하려고 하는 사업은 부동산 업계에서 쓸 수 있는 SaaS 사업이다. 나도 나름 큰 SaaS 회사에서 일한 적도 있고, 비록 부동산은 아니지만 물류에서 SaaS를 만들어서 오래된 일하는 방식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바꿔보겠다는 스타트업에서 잠깐이지만 몸담았어서 이런 스타트업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문제점들을 안다. 원래는 남친이 하는 일에 별말 안 하고 묵묵히 응원하는 편인데, 굳이 그가 PT 슬라이드를 보여주고 그러면, 나는 또 피드백을 해줘야만 하자나... 이런 인더스트리 전문 솔루션을 만들면서 투자를 받을 때 겪는 흔한 문제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업계 경험이 없는 투자가들에게 우리가 풀려는 문제가 크고, 진짜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컨대 부동산에서 자산을 매입할 때 프로세스가 뭔지 난 모르는데 여기의 비효율성을 해결한다고 하면, 일단 관심도가 뚝 떨어지곤 한다. 이럴 때 창업가들은 "아~ 우리는 인더스트리 투자자들한테만 투자받을 거야. 업계 사람들은 한번에 다 알아들어"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문제 정의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백타 후회한다. 어찌저찌 엔젤은 산업 이해도가 높은 corp vc들에서 받을 수는 있지만, 그 뒤부터는 정통적인 vc들을 투자자로 끼는 게 중요한데 그건 그때가서 하는 게 아니고 미리 해놓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스타트업은 내가 회사를 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데, 주로 내가 풀려는 문제로 공감을 얻었을 때 가장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던 (직원이 될 수도, 투자자가 될 수도, 고객이 될 수도 있는), 인더스트리의 문제를 인더스트리 밖의 사람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내러티브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나는 몇 달간 얘가 풀려는 문제가 와닿지 않았다. 이렇게 인더스트리가 아닌 사람들에게 인더스트리 문제를 설명할 때 유용한 팁은 문제를 개인의 레벨로 데려오는 것이다. "Industry is suffering..."이라고 말하는 것을 "뿅뿅이는 일하는 게 ㅈ같다. 왜?"로 고치면 된다. 산업은 사람이 아니다. 산업은 아플 수가 없다. 비효율성으로 낭비되는 돈이 몇백억이라고 아무리 힘주어 말해도, 그건 듣는 사람에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마켓이 고통받는다, 회사가 비효율에 고통받고 손해본다, 이런 거 별로 안 와닿는다. 그래서 B2B 솔루션은 어떤 사람이 고통을 누가 받는지 잘 봐야 한다. 직원이 받나, 사장이 받나, 매니저가 받나, 그런 것들을 잘 설명해줘야 청중들은 더 재미나게 들을 것이다. 암튼 결론은 그래서, 내가 문제 정의를 다시 해주었다. "진짜 문제는 디지털화를 산업이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비효율성이 아니고, 사회 전반적으로 디지털화가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가는 정보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아져서 예전보다 직원들의 ROI가 안 나는 게 문제인 거 아니야?" 우리 남친, 내가 너 이런 거 봐주려고 스타트업 갔다 왔나 봐... 잘 돼서 나 호강 부탁한다.

1. 코로나 이후 포탈 실검 1위부터 10위까지 처음 듣는 상장사로 채워지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주식 때문에 검색어에 있는 거다. 그 리스트 열 중 아홉은 크게 오른 것. 그 중 또 아홉은 코로나 때문에 오른 것. 정상은 아니다. 2. 최근 주식 한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벌었다. 많이 벌었느냐 조금 벌었느냐 차이만 있을 뿐 전부 다 벌었다. 요즘처럼 상한가가 난무한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해피엔딩일 리는 없다. 3. 증권회사 형한테서 최근 개인이 주식 때문에 빚 내는 추이에 대해 들었는데 정말 다들 혈안이 됐더라. 선OO이란 분이 누구나 주식하면 25% 정도는 다 벌 수 있다고 책을 냈다던데 워렌버핏이 매년 평균 20% 수익을 냈더니 세계최고부자가 되었다. 근데 당신이 25%를 지속적으로 번다고? ㅎㅎ 4. 1) 처음에 1억으로 주식 시작한 사람이 차차 투자금을 줄여 나중에 백만원만 갖고 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100만원 하다가 천만원, 일억, 끝엔 십억 늘려가겠지. 2) 백만원으로 일년을 열심히 굴려 백프로 수익 낸 자가 이거 되네 싶어서 십억 투자했다. 첫날 1프로만 손실 봐도 1년간 번 돈의 열배 손실을 본 거다. 요즘같이 실물과 무관한 주식장에서 동학하는 마음으로 투자, 1)+2) 하면 우리 학창시절 수학 시험에 나온 Gambler’s ruin problem과 비슷하다. 그 문제의 정답은 제목 그대로 ‘결국엔 망한다’ 이다. 5. 주식을 전업으로 하던 친구는 얼마 전 자산운용사를 차렸다. 그 친구 말에 따르면 여의도에 큰돈을 번 전설적인 개미가 52명 있었는데 그 중 51명이 비참하게 끝났고 자기가 마지막 생존자란다. 웃자고 한 얘기겠지만 완전 뻥은 아닌 일부 사실로 알고 있다. 6. 옛날 내 블로그를 본 사람들은 기억할 텐데 나는 계속 이렇게 말해왔다. 직장인이 수시로 사고파는 주식 거래에 빠지면 돈 뿐만 아니라 자기 관심과 시간이 거기 걸려있게 된다. 그 시간과 관심은 공짜가 아니다. 자기의 본업에서 빼쓰게 된다. (장은 근무시간에 열리니까) 그렇다면 근무시간에 그렇게 재테크랍시고 하는 사람과, 그런 거 모르고 자기 일에 올인 하는 사람 중에 누구의 미래가 더 밝을까. 단기적으로는 전자가 조금 더 벌 가능성도 있겠지만 (아니 사실 잃을 가능성이 더 높지) 장기적으로는 후자가 전자를 이긴다 고 믿는다. 스스로한테 누적되고, 또 지속되고 보존되는 것은 둘 중 후자니까. 특히 작은 회사의 얼리스테이지에 다닌다면 자기 회사 주식을 사놓고 그 담엔 잊어버리고 그냥 자기 실력 경험 늘리는데 최선을 다해보는 거다. 그런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보상, 자기가 만든 자기 미래는 주식 창에 코박고 있는 사람들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스케일이다. 7. 직장인이 주식을 사는 건 좋다. 그러나 수시로 사고파는 것은 앞서 얘기한 대로 위험하다. 월급보다 큰 돈을 하루에 벌면 지 일이 우습다. 반대로 잃으면 지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옆 친구가 핸드폰 붙잡고 하루 만에 월급을 벌었다고 좋아하나.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맡은 일을 잘 할 궁리하자. 그래도 뭔가 아쉽다면 제일 좋아 보이는 회사 주식을 틈날 때 여유있을 때 사놓고 다시 자기 일 잘 할 궁리를 하자. 아까 그 친구는 나중에 절대 너를 못 이긴다. 8. 나로 말하자면 주식이든 그림이든 그 어느 것도 사기만 하고 평생 판 적 없는 사람인데 (심지어 20년 가지고 있는 내 회사 주식도 아직 단 한 주도 판 적이 없다) 최근 아이 교육을 위해 첨으로 주식앱을 깔고 큰아이의 전 재산 200만 원을 받아 두 개의 주식을 사줬고 한 달 뒤 아이 재산은 580만원이 됐다. 아이에게 보고 하면서 이런 대화를 했다. “아이야. 0 몇 개 더 붙여서 똑같은 주식을 샀으면 니가 대학 안 가고 놀아도 될 뻔했다.” “아빠 역시 열심히 살아봤자 소용없는 거 같아요. 세상이 이렇게 돈 있는 사람이 돈 버는 구조인 거잖아요.” 9.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거들랑 다시 4번으로 가거라. 니가 떠올린 어떤 큰 부자가 있다면 그 사람 부자만든게 남의 주식 아니고 지 일, 지 회사 주식일 거다. 10.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몇 주 전부터 꼭 짬내서 이렇게 적어두고 싶었다. 너네 그러다 큰일 난다고.

프레인 글로벌 CEO 여준영

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드라마, 그리고 스포츠 경기를 통해서 경영에 대해 제일 많은 생각과 고민거리를 얻는다. 유치한 예전 드라마도 여러번 돌려보는 습관이 있는데, 2006년에 SBS에서 방영되었던 김하늘/이범수/박용하 주연의 '온에어'를 보면 전도연이 까메오로 출연해서 배우 지망생인 김하늘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대사가 있다. '나처럼 되는건 쉬워, 누가 너처럼 되고 싶게 만드는게 어렵지' 4년이 흘렀다. 대졸 신입으로 스톤브릿지에 들어가서 4년 정도 일한 뒤에, 지금으로부터 4년전 2012년 8월말에 큰 결심을 너무 스피디하게 내리고 패스트트랙아시아로 풀타임으로 옮겨서 일을 시작했다. 4년은 하루하루가 치열한 전투였고, 그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 명의 제대로 된 사장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는 점을 내 스스로를 반추해보며 느끼게 된 4년이었다. 생각해보면 투자만 했었지 사업을 해본 경험이 없는 내가, 마찬가지로 첫 번째 사업을 하는 여러 명의 파트너 회사 CEO 분들과 각기 다 다른 사업을 한다는게 얼마나 무모한 도전이었는지 그 땐 몰랐다. 단순한 소수 지분 투자자로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한두개의 잭팟이 나오면 되는 것이 아니다보니 더욱 그렇다. 예전에는 망하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였지만, 지금은 시작할 때의 그 눈빛과 거쳐온 과정을 알기에 망하면 어쩔 수 없지... 라는 쿨함이 생기지 않고, 나도 그 시작에 동의했다면 함께 책임져야겠다는 그럴듯한 책임감이 어깨 위에 1톤 트럭처럼 가득하다. 그 무게를 가중시키는건, 전도연이 얘기했던 대사처럼 누군가를 따라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처음인 시도를 해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잘된거 스마트하게 베끼면 참 좋을텐데, 그렇게 하자니 여러가지가 안맞고, 내가 생각한 것을 흰 도화지에 하나하나 그리고, 또 그린 내용을 이해관계자와 시장참가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나가는 과정은 그 대사처럼 난이도가 정말 높은 일이었다. 누가 사업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 4년의 결론은 '긍정적인 마인드'다. 물론, 스타트업의 하루하루는 비관으로 가득하다, 항상 안되는게 더 많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 속에 이렇게 하면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최소한의 긍정적인 마인드인 것 같다. 두 발은 땅에 닿아 있지만 머릿 속은 하늘을 향해 있는 것, 긍정적인 마인드는 결국 포기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업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여겨 오래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매일의 굴곡을 견뎌내는 힘은, 내일은 잘될 수 있다는 다소 논리는 부족하지만 Gut Feeling에서 나오는 고집, 감.. 이런거였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내 자신에 대한 믿음과 내 이름 걸고 하는 것에서 오는 자존심 같은 원초적인 니즈가 자리해있다. 한 가지만 더 꼽자면, '외로움을 견뎌내는 나름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CEO 뒤에 누가 없다는 것, 내가 내린 결정이 적게는 수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런데 그 결정을 내릴 때에는 완벽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쉬운 결정은 없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쉽게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잘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등을 많이 느낀다. 1,2년은 그냥 쌓아두고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3,4년 이상은 아니다. 회사가 망하지 않고 성장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중요한 것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명료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CEO의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된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쌓아두면 폭발하거나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점도 크게 느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게 참 끝이 없다. 시작할 때에는 3,4개 회사 런칭해서 1개라도 잘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초반 시행착오 이후에 만드는 회사마다 Product - Market Fit을 확인하게 되니 얼른 월 매출 1억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월 매출 1억을 모든 회사가 넘기니 월 매출 5-6억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를 또 모든 회사가 넘기니 빨리 월 10억이 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여러개 중에 하나만 잘되어도 행복했지만, 지금은 하나만 안되어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거다. 정말 신기한 건, 회사의 스테이지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느끼는 어려움과 압박감은 똑같지 않다. 작아지지 않고 계속 커진다. 한판 한판 깨면서 올라가면 더 쎈 보스가 나오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예전에는 신문 기사에 나온 오래 경영을 하신 경영자 분들의 인터뷰 내용이 (예: 매일 위기라고 생각한다, 초심으로 돌아간다 등) 정말 재미없고 식상한 도덕교과서 같은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확실히 피부를 넘어 가슴에 와닿는 포인트들이 생기고, 문제와 해결책은 점점 심플해지고 본질로 돌아간다. 좋은 사람들을 찾아, 적재적소에 자원을 제공하여,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 4년 뒤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 길고 깊은 회고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투자하는 일과 지금의 여러가지 사업을 하는 일 중에 뭐가 더 재밌냐는 질문을 많이 받곤 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다. 내 스스로를 계속해서 prove 해나가는, 지금의 사업하는 것이 더 좋다.

패스트트랙아시아 박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