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린 나의 남친은 오랜 기간 꿈이 사업가다. 지금까지 계속 그 꿈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이번에 그가 하려고 하는 사업은 부동산 업계에서 쓸 수 있는 SaaS 사업이다. 나도 나름 큰 SaaS 회사에서 일한 적도 있고, 비록 부동산은 아니지만 물류에서 SaaS를 만들어서 오래된 일하는 방식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바꿔보겠다는 스타트업에서 잠깐이지만 몸담았어서 이런 스타트업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문제점들을 안다. 원래는 남친이 하는 일에 별말 안 하고 묵묵히 응원하는 편인데, 굳이 그가 PT 슬라이드를 보여주고 그러면, 나는 또 피드백을 해줘야만 하자나... 이런 인더스트리 전문 솔루션을 만들면서 투자를 받을 때 겪는 흔한 문제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업계 경험이 없는 투자가들에게 우리가 풀려는 문제가 크고, 진짜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컨대 부동산에서 자산을 매입할 때 프로세스가 뭔지 난 모르는데 여기의 비효율성을 해결한다고 하면, 일단 관심도가 뚝 떨어지곤 한다. 이럴 때 창업가들은 "아~ 우리는 인더스트리 투자자들한테만 투자받을 거야. 업계 사람들은 한번에 다 알아들어"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문제 정의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백타 후회한다. 어찌저찌 엔젤은 산업 이해도가 높은 corp vc들에서 받을 수는 있지만, 그 뒤부터는 정통적인 vc들을 투자자로 끼는 게 중요한데 그건 그때가서 하는 게 아니고 미리 해놓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스타트업은 내가 회사를 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데, 주로 내가 풀려는 문제로 공감을 얻었을 때 가장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던 (직원이 될 수도, 투자자가 될 수도, 고객이 될 수도 있는), 인더스트리의 문제를 인더스트리 밖의 사람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내러티브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나는 몇 달간 얘가 풀려는 문제가 와닿지 않았다. 이렇게 인더스트리가 아닌 사람들에게 인더스트리 문제를 설명할 때 유용한 팁은 문제를 개인의 레벨로 데려오는 것이다. "Industry is suffering..."이라고 말하는 것을 "뿅뿅이는 일하는 게 ㅈ같다. 왜?"로 고치면 된다. 산업은 사람이 아니다. 산업은 아플 수가 없다. 비효율성으로 낭비되는 돈이 몇백억이라고 아무리 힘주어 말해도, 그건 듣는 사람에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마켓이 고통받는다, 회사가 비효율에 고통받고 손해본다, 이런 거 별로 안 와닿는다. 그래서 B2B 솔루션은 어떤 사람이 고통을 누가 받는지 잘 봐야 한다. 직원이 받나, 사장이 받나, 매니저가 받나, 그런 것들을 잘 설명해줘야 청중들은 더 재미나게 들을 것이다. 암튼 결론은 그래서, 내가 문제 정의를 다시 해주었다. "진짜 문제는 디지털화를 산업이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비효율성이 아니고, 사회 전반적으로 디지털화가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가는 정보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아져서 예전보다 직원들의 ROI가 안 나는 게 문제인 거 아니야?" 우리 남친, 내가 너 이런 거 봐주려고 스타트업 갔다 왔나 봐... 잘 돼서 나 호강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