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저물녘에 낡아빠진 경운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우리 동네 김씨가 절을 하고 계신다. 밭에서 딴 사과 네 알, 감 다섯 개, 막걸리와 고추장아찌 한 그릇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무릎 꿇듯 큰절을 하신다. 나도 따라 절을 하고 막걸리를 마신다. 23년을 고쳐 써 온 경운기 한 대가 그 긴 세월 열세 마지기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 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박노해, <경운기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