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난번에 서로의 사람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잖아. 그때 내가 물었지. 세상의 수많은 남자들처럼 너도 아직 첫사랑을 잊지 못하냐고. 잔뜩 당황한 얼굴을 하고서 그건 편견일 뿐이라며 손을 내젓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어. 네가 어떤 사람과 사랑의 서론을 열었는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또 어떤 사람과 사랑의 본론이란 이런 거구나, 그렇게 느낄만한 사랑을 했었는지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의 마지막을 기억해? 나는 너의 결론이 되고 싶어. 네 사랑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어. ‘내가 아는 한 시인은 꽃이 피는 걸 ‘핀다’라고 안하고 ‘목숨을 터뜨린다’라고 했어. 근사하지?’라는 구절도 엄청 넣고 싶었는데 가까스로 참았다. 누가 봐도 명백한 구애. 명백한 노력처럼 보이는 표현은 안 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여지 같은 것은 남기고 싶었다. 들키기 위해 숨어 있는 ‘틀린 그림’처럼, 부정이 아닌 시치미가, 긍정이 아닌 너스레가, 들꽃처럼 곳곳에 심겨 있길 바랐다.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